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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바라키현 제7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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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바라키현의 서부 지역인 코가시, 유키시, 시모츠마시, 조소시, 반도시, 유키군, 사시마군을 관할하는 일본의 중의원 선거구다.
현재 지역구 국회의원은 자유민주당 나가오카 게이코.
이 지역구는 자민당 의원들이 장악한 다른 지역구들과는 달리, 무소속 나카무라 기시로 의원의 강력한 지역 기반이었다.[1] 심지어 연립여당인 공명당도 나카무라 의원이 입헌민주당에 입당하기 전까지 이 지역구에 한해서는 자민당 후보가 아닌 나카무라 의원을 추천했다.
나카무라 의원이 무소속이 된 이유는 94년 건설대신 시절 뇌물을 수수한 혐의로 구속되면서 자민당을 탈당할 수 밖에 없어서이다. 하지만 재판 중에도 무소속으로 계속 당선되었고, 2002년 일본 대법원에서 확정판결이 나 의원직을 상실했으나 형기를 마치고 재출마해 의원직을 탈환했다.
나카무라가 의원직을 잃었을 때는 자유민주당 의 나가오카 요지 의원이 당선되었는데, 당시 소속 계파 수장인 가메이 시즈카의 결정을 무시하고 우정민영화 법안에 찬성 투표를 한 뒤 받은 비난을 견디지 못하고 자살했다. 이후 자민당에서는 나가오카 요지의 배우자인 나가오카 게이코 의원이 2005년부터 5번 연속 출마했다. 5번 모두 지역구 선거에서는 나카무라에게 패하나, 석패율 제도 덕분에 5번 모두 비례대표로 당선되어 현재는 5선 의원이다.
나카무라는 줄곳 무소속으로 활동하다 2020년에 최초로 야당 소속이 되었는데, 차기 총선의 관전 포인트는 과연 지역 주민들이 무소속이 아닌 야당 후보인 나카무라 기시로를 계속 찍어줄지 여부이다. 게다가 지난 선거까지는 지역 내 공명당 조직이 무소속 나카무라 기시로를 지지했는데, 나카무라가 입헌민주당에 입당한 이후에는 지지를 받지 못했다.
결국 제49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 나카무라 의원이 지역구에서 패배하면서, 나카무라 의원의 공고한 지지세가 무너지게 되었다.
무소속 나카무라 기시로 의원이 일본 대법원에서 뇌물 수수 유죄 판결이 확정되자마자 의원직을 잃었고, 따라서 보궐 선거가 치러졌다. 농림수산성 출신 관료이자 신진당 후보로 이바라키현 제3구에 출마한 적이 있고, 지난 선거에서는 무소속 후보로 낙선했던 나가오카 요지 후보가, 이번 보궐선거에서는 자민당으로 이적 후 공천을 받아 당선되었다.
이곳 터줏대감인 나카무라 기시로 전 의원이 일본 대법원 판결 확정으로 인해 출마를 못함에 따라, 지난 보궐선거에 이어 두 번 연속으로 유효표 수가 4만여표나 감소해버렸다. 상당수의 나카무라 지지 유권자들이 투표를 기권했다고 해석할 수 밖에 없고, 나카무라 전 의원의 영향력을 다시 한 번 확인하는 선거였다.
가메이파 정치인인 나가오카 요지 의원은, 파벌 영수인 가메이 시즈카의 의견을 따라 줄곳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의 우정민영화 법안에 반대 의견을 펼치다가, 막상 본회의에서는 찬성 투표를 던졌다. 막판에 결정을 바꾸는 바람에 유독 비판을 많이 받았고, 결국 자살했다. 유서가 없지만 다른 자살할 이유가 없기에, 우정민영화 문제때문에 받은 비판을 견디지 못하고 자살했다는 것이 중론이다.
자민당은 자살한 나가오카 요지 의원을 대신해, 그의 부인인 나가오카 게이코 후보를 공천했다. 석방된 뒤 피선거권도 회복된 나카무라 기시로 전 의원도 무소속으로 출마했다. 나가오카 요지 의원에 대한 동정 여론도 있었지만, 나카무라 기시로의 영향력이 너무 강하기에 무소속으로 출마해서도 당선되었다.
현역 입헌민주당 나카무라 기시로 의원과 자민당 나가오카 게이코 의원이 재대결한다.
나카무라 기시로 의원은 1993년 제40회 중의원 선거 이후 28년만에 최초로 정당 소속으로 선거에 출마하게 된다. 무소속이 아닌 입헌민주당 소속으로 출마해서 그런지, 지금까지 줄곧 나카무라를 선거에서 추천한 공명당이 처음으로 나카무라 대신 자민당 나가오카 후보를 추천했다. 대신 공산당이 처음으로 후보를 공천하지 않고 사실상 나카무라 후보로 단일화를 해줬다. 야당으로 옮겨가며 공명당이나 보수 지지층의 지지를 잃을 위험이 높은 나카무라에게는 그나마 희소식이다.
나가오카 의원은 이번에 지역구에서 패하고 석패율 제도를 통해 당선되면 무려 6번 연속 석패율 제도를 통한 비례대표 당선이라는 희귀한 기록을 세우게 된다.[9]
일본 유신회는 참의원의원 비서를 지낸 미즈나시 노부아키 후보를 공천했다.
개표 결과, 자민당 나가오카 게이코 후보가 당선되었다. 당초 선거 전 여론 조사들에선 나카무라 후보가 우세했으나, 선거 동안 불어닥친 세대 교체론에 밀려 패배한 것으로 보인다. 또한 나카무라가 입헌민주당 입당으로 인해, 공명당 조직 표를 얻지 못하게 된 것이 원인으로 보인다. 나카무라는 이로써 수십 년간 지켜온 지역구를 잃게 되버렸다. 그나마 접전패했기에 석패율제를 통해 비례대표로 구제되면서 의원직은 유지했다. 반대로 나가오카 후보는 5번의 석패율 구제끝에 지역구에서 당선되는 기쁨을 누리게 되었다.
나가오카 후보는 지역구 첫 당선 다음해 문부과학대신으로 취임하면서, 체급이 더 커졌다.
1구에 있던 시모츠마시 북부 지역을 넘겨받아 시 경계 분할이 해소되었다. 이제는 시모츠마시가 온전히 이 지역구에 포함되게 되었다.
7선에 도전하는 자민당 나가오카 게이코 의원과 16선에 도전하는 입헌민주당 나카무라 기시로 의원이 재대결이 예상된다. 다만 첫 지역구 당선을 이룬 다음 문부과학대신직을 역임하며 체급이 커진 나가오카 의원에 비해, 나카무라 의원은 처음으로 지역구에서 패배하고 고령이기도 해서 정계를 은퇴할 가능성도 어느정도 있다.
1. 개요[편집]
이바라키현의 서부 지역인 코가시, 유키시, 시모츠마시, 조소시, 반도시, 유키군, 사시마군을 관할하는 일본의 중의원 선거구다.
현재 지역구 국회의원은 자유민주당 나가오카 게이코.
2. 상세[편집]
이 지역구는 자민당 의원들이 장악한 다른 지역구들과는 달리, 무소속 나카무라 기시로 의원의 강력한 지역 기반이었다.[1] 심지어 연립여당인 공명당도 나카무라 의원이 입헌민주당에 입당하기 전까지 이 지역구에 한해서는 자민당 후보가 아닌 나카무라 의원을 추천했다.
나카무라 의원이 무소속이 된 이유는 94년 건설대신 시절 뇌물을 수수한 혐의로 구속되면서 자민당을 탈당할 수 밖에 없어서이다. 하지만 재판 중에도 무소속으로 계속 당선되었고, 2002년 일본 대법원에서 확정판결이 나 의원직을 상실했으나 형기를 마치고 재출마해 의원직을 탈환했다.
나카무라가 의원직을 잃었을 때는 자유민주당 의 나가오카 요지 의원이 당선되었는데, 당시 소속 계파 수장인 가메이 시즈카의 결정을 무시하고 우정민영화 법안에 찬성 투표를 한 뒤 받은 비난을 견디지 못하고 자살했다. 이후 자민당에서는 나가오카 요지의 배우자인 나가오카 게이코 의원이 2005년부터 5번 연속 출마했다. 5번 모두 지역구 선거에서는 나카무라에게 패하나, 석패율 제도 덕분에 5번 모두 비례대표로 당선되어 현재는 5선 의원이다.
나카무라는 줄곳 무소속으로 활동하다 2020년에 최초로 야당 소속이 되었는데, 차기 총선의 관전 포인트는 과연 지역 주민들이 무소속이 아닌 야당 후보인 나카무라 기시로를 계속 찍어줄지 여부이다. 게다가 지난 선거까지는 지역 내 공명당 조직이 무소속 나카무라 기시로를 지지했는데, 나카무라가 입헌민주당에 입당한 이후에는 지지를 받지 못했다.
결국 제49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 나카무라 의원이 지역구에서 패배하면서, 나카무라 의원의 공고한 지지세가 무너지게 되었다.
3. 역대 국회의원[편집]
4. 역대 선거 결과[편집]
4.1. 제41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편집]
4.2. 제42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편집]
4.3. 제42회 일본 중의원 의원 보궐선거[편집]
무소속 나카무라 기시로 의원이 일본 대법원에서 뇌물 수수 유죄 판결이 확정되자마자 의원직을 잃었고, 따라서 보궐 선거가 치러졌다. 농림수산성 출신 관료이자 신진당 후보로 이바라키현 제3구에 출마한 적이 있고, 지난 선거에서는 무소속 후보로 낙선했던 나가오카 요지 후보가, 이번 보궐선거에서는 자민당으로 이적 후 공천을 받아 당선되었다.
4.4. 제43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편집]
이곳 터줏대감인 나카무라 기시로 전 의원이 일본 대법원 판결 확정으로 인해 출마를 못함에 따라, 지난 보궐선거에 이어 두 번 연속으로 유효표 수가 4만여표나 감소해버렸다. 상당수의 나카무라 지지 유권자들이 투표를 기권했다고 해석할 수 밖에 없고, 나카무라 전 의원의 영향력을 다시 한 번 확인하는 선거였다.
4.5. 제44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편집]
가메이파 정치인인 나가오카 요지 의원은, 파벌 영수인 가메이 시즈카의 의견을 따라 줄곳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의 우정민영화 법안에 반대 의견을 펼치다가, 막상 본회의에서는 찬성 투표를 던졌다. 막판에 결정을 바꾸는 바람에 유독 비판을 많이 받았고, 결국 자살했다. 유서가 없지만 다른 자살할 이유가 없기에, 우정민영화 문제때문에 받은 비판을 견디지 못하고 자살했다는 것이 중론이다.
자민당은 자살한 나가오카 요지 의원을 대신해, 그의 부인인 나가오카 게이코 후보를 공천했다. 석방된 뒤 피선거권도 회복된 나카무라 기시로 전 의원도 무소속으로 출마했다. 나가오카 요지 의원에 대한 동정 여론도 있었지만, 나카무라 기시로의 영향력이 너무 강하기에 무소속으로 출마해서도 당선되었다.
4.6. 제45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편집]
4.7. 제46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편집]
4.8. 제47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편집]
4.9. 제48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편집]
4.10. 제49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편집]
현역 입헌민주당 나카무라 기시로 의원과 자민당 나가오카 게이코 의원이 재대결한다.
나카무라 기시로 의원은 1993년 제40회 중의원 선거 이후 28년만에 최초로 정당 소속으로 선거에 출마하게 된다. 무소속이 아닌 입헌민주당 소속으로 출마해서 그런지, 지금까지 줄곧 나카무라를 선거에서 추천한 공명당이 처음으로 나카무라 대신 자민당 나가오카 후보를 추천했다. 대신 공산당이 처음으로 후보를 공천하지 않고 사실상 나카무라 후보로 단일화를 해줬다. 야당으로 옮겨가며 공명당이나 보수 지지층의 지지를 잃을 위험이 높은 나카무라에게는 그나마 희소식이다.
나가오카 의원은 이번에 지역구에서 패하고 석패율 제도를 통해 당선되면 무려 6번 연속 석패율 제도를 통한 비례대표 당선이라는 희귀한 기록을 세우게 된다.[9]
일본 유신회는 참의원의원 비서를 지낸 미즈나시 노부아키 후보를 공천했다.
개표 결과, 자민당 나가오카 게이코 후보가 당선되었다. 당초 선거 전 여론 조사들에선 나카무라 후보가 우세했으나, 선거 동안 불어닥친 세대 교체론에 밀려 패배한 것으로 보인다. 또한 나카무라가 입헌민주당 입당으로 인해, 공명당 조직 표를 얻지 못하게 된 것이 원인으로 보인다. 나카무라는 이로써 수십 년간 지켜온 지역구를 잃게 되버렸다. 그나마 접전패했기에 석패율제를 통해 비례대표로 구제되면서 의원직은 유지했다. 반대로 나가오카 후보는 5번의 석패율 구제끝에 지역구에서 당선되는 기쁨을 누리게 되었다.
나가오카 후보는 지역구 첫 당선 다음해 문부과학대신으로 취임하면서, 체급이 더 커졌다.
4.11. 제50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편집]
1구에 있던 시모츠마시 북부 지역을 넘겨받아 시 경계 분할이 해소되었다. 이제는 시모츠마시가 온전히 이 지역구에 포함되게 되었다.
7선에 도전하는 자민당 나가오카 게이코 의원과 16선에 도전하는 입헌민주당 나카무라 기시로 의원이 재대결이 예상된다. 다만 첫 지역구 당선을 이룬 다음 문부과학대신직을 역임하며 체급이 커진 나가오카 의원에 비해, 나카무라 의원은 처음으로 지역구에서 패배하고 고령이기도 해서 정계를 은퇴할 가능성도 어느정도 있다.
[1] 본명은 ‘나카무라 신’이나 참의원이었던 아버지의 이름인 '기시로'로 개명했다. 한때 자민당에 몸 담은 적이 있으며 건설대신, 과학기술청 장관 등을 역임한 적이 있으나, 중의원 선거 첫 출마도 무소속으로 출마해 당선되었으며, 정치 경력도 무소속으로 활동한 경력이 더 길다.[2] 나가오카 게이코 현 문부과학대신의 배우자(남편).[3] 나가오카 겐지 전 중의원 의원의 배우자(아내).[4] 추천[5] 추천[6] 추천[7] 추천[8] 추천[9] 가나가와현 제12구의 아베 도모코 의원의 기록과 동률을 이루게 된다.